[카디] Arbitrage 2
: Posted by 슈크림
Arbitrage를 읽으시기 전, 우선 이 글은 Fumerie님이 쓰신 외국픽 Arbitrage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권한은 Fumerie님께서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원작을 한국어로 '번역'만 한 것임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원글 http://fumerie.live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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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itrage
W. Fum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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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에는 또다시 비가 추적히 내리고있었다. 젖은 아스팔트는 차가웠고,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는 바지에 젖어들어갔다. 무릎이 마치 찰과상을 당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허공에 손을 허우적 거려 보았다. 단색의 서울에는,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뭐가 그렇게 많이 바뀌지도 않았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지만, 달뜬 몸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더 긴 길을 걸어갔다. 비가 조금씩 그쳐갈 때 즈음, 길거리에 보이는 어느 한 편의점에서 멈춰 섰다. 손은 차가웠고, 그 추위는 커피를 찾게 했다.
편의점 안에는 손님 한 명이 더 있었다. 짙은 남색의 맨투맨을 입은 키가 조금 작은 남자가 토마토 통조림이 우주의 비밀을 풀 열쇠라도 되는듯한 심각한 얼굴로 토마토 통조림을 고르고 있었다. 종인은 그 작은 남자를 알아챘다. 그 남자를 본 것은 아주 짤막한순간 - 예컨대 찬열의 큰 키 안에 안겨진 순간이라던가 민석의 차로 가려진 순간 - 이었지만, 저 큰 두 눈이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조금은 멍하고 두려움에 떠는 듯 한 모습은 확실히 기억했다. 두 대의 차들이 충돌해 유리 조각들과 금속 파편을 튀길 때 종인은 저 큰 두 눈이 선팅 된 차 창문을 뚫고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똑똑히 보았던 것을 기억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두 볼, 말랑말랑해 보이는 귀여운 입술, 짙은 색의 단정한 머리. 작은 남자는 빨간색의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종인이 비에 젖은 저의 머리에 가득한 물기를 손으로 재빨리 털어내며 작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안녕."
종인이 마치 귀엽고 작은 강아지를 본 것처럼 상냥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그걸 다 들고 빗속에서 달리기라도 하시려고?"
작은 남자가 몸을 돌려 종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귀신을 봤는데 달아나야 할지 아니면 소리라도 꽥 질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한 큰 눈으로 말이다.
"카이. 내 이름이야."
무엇인가를 소개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듯 한 억양과 말투였다. 종인은 제 앞에 보이는 저 작은 남자가 저를 잊어버렸나 하고 생각했다. 작은 남자는 제 장바구니를 조물락거리며 '나도 알아'라고 하는 것 같은 말소리를 우물우물 씹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종인에게서 눈을 피하며 허둥지둥히 통조림 토마토를 집으며 마치 그것이 방패인양 저의 품 안에 꼭 담았다. 종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 네 차에 대해서는 미안해. 사적인 감정은 없었어, 맹세할게. 어... 그 차 아직 잘 굴러가는 거... 맞지?"
작은 남자가 어이없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허망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토마토 통조림을 장바구니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파스타 한 봉지, 치즈 한 팩. 기본적이고 단조로운 삶에 기본적이고 단조로운 음식들.
"이미 내 차에 대해서 희망을 버린지는 오래거든."
"내가 미안해."
종인이 상대방을 무장 해재시킬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시도했다. 내가 수리비를 물어낼게, 따위의 말을 하며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남자는 계산대로 걸어갔고, 종인은 재빨리 캔커피를 하나 집어 들고서는 그 뒤를 따라갔다.
경수의 다른 팔에 끼여 있는 우산을 가리켰다.
"우산 있네. 그리고 아마도 조금 있다가 음식을 만들테고?"
작은 남자가 몸을 돌려 종인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가 네가 우리집에 따라올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걸까. 그것도 내가 만들어주는 공짜 밥을 먹기 위해서?"
"어, 왜냐하면 너는 진짜 진짜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봐봐, 나 빗물에 이렇게 홀딱 젖었는데."
어찌어찌하여 그 둘은 다 큰 성인 남자 둘에게는 턱도 없이 작은 우산 아래를 함께 걷고 있었다. 종인의 어깨 한 쪽이 더 젖어들어갔으니 말 다 했다. 작은 남자는 계속해서 저의 우산을 들고 있었고, 따갑고 날카롭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종인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손가락 사이에 들려있는 캔커피는 여전히 따뜻했다.
"근데 너 진짜 안 무서워? 네가 나를 너네 집에 데려가자마자 너를 죽일 수도 있는데?"
경수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오, 나 이 아파트 알아. 여기 종대가 사는 곳 아니야? 그 왜 있잖아, 잘 웃는 애, 그 공룡 광대. M 팀 소속. 언제 종대를 한 번 본적이 있었을거야, 안 그래? 요새는 계속 그 애들이랑 어울려다니니까."
"나는 지금 네가 나를 죽이는 것보다 네가 우리 집 바닥을 홍수나게 만들까 그게 더 걱정된다."
경수가 코웃음을 한 번 치며 현관문을 열었다.
"지금 너 완전 푹 젖은 푸들 같거든. 거기 꼼짝 말고 서있어, 수건 가져올테니까."
"내가 너네 집에 따라오겠다고 한 거, 그거 그냥 농담이었는데."
종인이 빗물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자켓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그런데 진짜 집에 데려왔어. 그러면 네가 그 살인마일수도 있겠네, 나를 너네 집까지 음식이랑 수건을 주겠다고 유혹해서 말이야."
실제로 경수의 집은 살인마의 안식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다 - 으스스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 텅 빈 공간들. 침상 위에는 쿠션들이 한 번도 만진 적이 없는 것처럼 놓여있었다. 이윽고 종인이 저의 티셔츠를 벗고 바지 버클을 풀기 시작했다. 그에 거실로 돌아온 경수는 꽥 소리를 지르며 수건을 종인의 얼굴에 냅다 던졌다.
"지금 뭐 하는거야?!"
"뭐가?"
종인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저의 어깨에 수건을 둘렀다.
"내 옷 다 젖었단 말이야. 추워."
종인이 속옷만 남기고 옷을 다 벗었다. 경수는 그런 종인을 한 번 노려봤다가 종인이 벗어던진 옷가지들을 집어 들며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종인이 저의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서는 주방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경수가 김치 스파게티라는 이상한 퓨전 음식을 만들고 있는 동안에 종인은 가만히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치즈가 볶아지는 냄새는 고소했고, 김치는 맛있었기 때문에 경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차를 거의 박살낸 낯선 사람한테 되게 친숙하게 구네. 보자마자 반말이나 하고. 그나저나 차고에 안 들린지 도대체 얼마나 된거야?"
경수가 물었다.
"걔네들이 너 되게 보고싶어하던 거 같은데."
"나도 모르겠어. 잘 생각이 안 나."
종인이 김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빨간 것이 접시에 떨어졌다. 종인이 어떤 반응을 취하기 전에 하얀 휴지 뭉텅이가 종인의 얼굴에 떠밀렸다.
"헐. 음식에다가 피 흘리지 마."
종인이 저의 코에 휴지를 막으며 당황스러움에 웃음을 흘렸다. 경수가 종인을 소파로 데려가 눕게 만든 다음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있게 했다. 그리고 경수는 조용히 부엌을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인은 경수의 머스타드 색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아직도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밖은 어둑어둑했다. 조용한 방에 빗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는 계속 무겁고, 온몸이 피로하고 쑤셨다. 그에 종인은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종인이 두 번째로 일어났을 때에는, 창밖의 하늘이 어느새 밝아져있었고, 저가 벗어둔 옷가지들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개어져 옆의 커피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경수가 집에 없는 것을 보아하니 외출을 한 듯싶었고, 이상하게도 종인은 어젯밤의 한바탕 은밀한 정사 후의 나른한 아침 같은 기분을 느꼈다.
종인은 거리의 끝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녹색의 버스를 탔다. 쇠기둥에 기대어 아스팔트 바닥에 마찰되는 타이어의 소리를 느꼈다. 종인이 차고에 다다랐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찬열이었다. 종인은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찬열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전에, 찬열이 종인에게 헤드록을 걸어대었다.
"야 카이!"
찬열이 웃으며 종인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종인은 이렇게 저의 머리를 마구 헝클이고 괴롭히는 손길이 조금은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와, 이렇게 빨리 보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어떻게 한 주를 넘기지가 않았어! 대박, 신기록인데?"
"그런 거야?"
찬열의 손을 조심스럽게 치우고는 저 편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뭐, 저번 주에 네가 네 재규어로 들이받았을 때 얼굴을 본 것도 있는데, 그냥 그건 관광 차원이라고 칠게."
타오가 종인을 끌어안고, 백현이 종인의 등을 두드렸다.
"그나저나 민석이는 어디 있는거야? 그래야지 내가 저번에 차 긁은거 용서라도 빌 수 있지."
종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지만,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저가 아는듯 했다. 이른 아침에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들 - 이씽, 찬열, 백현과 타오 - 이다.
"글쎄, 민석이는 여기 없고, 그 용서 비는건 여기 있는 경수에게 대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은데."
이씽이 종인의 등을 떠밀었다. 종인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경수를 향해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경수도 고개를 들어 그 큰 눈으로 마치 도로변의 신호등에서 사슴과 운전석의 운전수가 마주친 것처럼 그렇게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EXO-K에 이번에 새로 온 멤버! 저번주에 네가 거의 반 박살냈던 검정색 제네시스를 몰던 사람이야!"
이씽이 종인의 등을 더 세게 떠밀었다. 이씽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고있었고, 종인은 경수에게 다가갔다.
"아... 그래, 어, 어. 저번에 그쪽 제네시스에 대해서는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럼 다시 시작할까?"
종인이 경수의 앞으로 손을 쭈욱 뻗었다.
"카이라고 해."
경수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팔을 뻗어 종인의 악수를 받아들었다. 종인의 손안에 잡힌 경수의 손은 종인의 손해 비해 작았지만, 따뜻했다.
"나는 도경수. 그리고 네 재규어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없다는 거, 알아둬."
그 말에 찬열이 목구멍에서 큰 웃음을 토해냈다.
"그 재규어에 대해서는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을걸."
경수가 고개를 까딱하고 흔든다.
"그 왜, 알잖아,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버리는지, 뭐 똑똑한 것들을 빼고 말이야? 똑똑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하는거지. 그게 카이가 들어오는 곳이야. 카이는, 뭐랄까, 청부 살인자라고 해야하지?"
찬열이 종인의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걸로 카이가 먹고 사는거지. 그것 때문에 카이가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는거야, 더이상. 이젠 돈을 위해서 레이스를 하는것은 아니란 거야, 적어도."
"그닥 살인마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경수는 자기가 한 말이 꽤 재미있는 칭찬이었다고 생각했다.
종인이 경수의 옆에 앉았다. 경수의 어깨에 종인의 어깨가 나란히 맞닿았다.
"빨간색 페라리 360 라던가, 노란색 람보르기니 갈라르도 LP 570-4, 은색 재규어 XJ 세단, 흰색 포르셰 S, 파란색 마세라티. 이 차들 가격을 한 번 세어 봐봐. 삐까번쩍한 슈퍼카들, 어느 축구장 부럽지 않은 호화로운 대저택이라던가, 그리고 그 슈퍼카들로 깔린 뒤뜰같은 거 말이야. 이 주변에는 항상 그런 늙은 재벌가들이 저런 억소리 나는 차들을 가지고 사고내기를 좋아하지."
엉키고 설킨 이혼이라던가 유산 상속에 낭패를 본 사람들이 그런 페라리 따위의 슈퍼카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하기 마련이다. 파산한 사람들은 슈퍼카들을 뒷받침할 돈이 없어 결국은 내다 팔아야 할 것이다. 파산한 재벌가들의 부인들이 모는 차들. 보험 사기. 복수. 절망. 사랑. 절벽 끝에서 차를 떨어뜨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마찰되는 소음이나 콘크리트 벽에 금속 파편들이 찌그러지는 소음이 그런 오래되고 허황된 꿈들을 사지로 내모는 소리를 대변해 줄 뿐이다.
"그런 것들을 카이가 죽이는 거지. 더럽고 추잡한 부자들의 오래되고 허황된 꿈 같은 것 말이야. 사랑으로 변했던 돈 뭉치가 그제서야 절벽 끝에 매달린 금속 잔해가 되는거지."
"보수는 꽤 좋아."
종인이 흰 Silvia의 문짝에 기대어 흘러가듯 말했다.
"뭐, 놀랍게도 그런 것들이 꽤나 높은 가치를 사는 거라고나 할까."
"모두가 삐까번쩍한 포르셰를 표지판에 들이받고 절벽 끝으로 떨어뜨릴만한 그런 강심장을 가지고 있진 않지. 사람들은 그런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짓에 높은 보수를 주는 거고. 그래서 내가 계속 카이한테 그러잖아, 그 차들을 박살내기 전에 문짝이나 와이퍼 하나 정도는 떼어달라고. 내다 팔아서 나도 돈 좀 벌어보게."
"그건랑 그거는 같은 게 아니지.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면 꽤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그래서 그게 네가 더이상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잖아. 왜냐면 너는 이제 항상 차사고를 위해 운전하니까."
경수가 무언가 잔뜩 고심하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런 경수를 보며 종인은 생각했다, 아마도 경수는 웃는 것이 더 잘생겼을 거라고.
"그러는 그쪽은 뭘 하고 먹고 사는건지?"
종인이 경수의 깔끔한 손톱을 주시하며 물었다. 경수의 손이 저의 무릎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어... 은행에서 일 해. 별로 재미는 없지, 네 그 거래에 비하면 말이야."
"숫자를 세고, 돈을 세고, 세계의 돈을 관리하고. 그런 양복 입은 은행원이 주말에 스릴을 즐긴다- 이 말이지?"
종인이 경수를 놀리는듯 한 웃음을 지었다. 그에 경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기만 했다.
"뭐, 그런 거지."
"그래 그래 뭐 오늘 밤에 술 한잔씩 다들 어때? 세훈이랑 민석이는 조금 있다 올 거야."
이씽이 종인의 등을 살짝 쳤다.
"어, 나는 다음에. 나는 지금 가야할거 같거든. 걔네들한테 내가 왔었다고 인사나 전해줘."
***
그것은 사고였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종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 저녁에, 자신이 부셨던 그 반쯤 부서진 창문과 코팅이 다 일어난 검은색 제네시스가 도로변을 달리는 것을 목격했다. 만약에 종인이 조금 더 세밀하고 깊게 봤더라면, 재규어의 은색 금속 파편들이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지만, 제네시스는 아주 크게 중심을 잃더니 차선을 마구 넘나들며 도로 중심에서 이리저리 미끌거렸다. 그리고는 허공을 날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높게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거대한 금속 뼈대가 그 무게를 상실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차가 뒤집어진 채로 땅으로 추락했다가, 몇 번 굴렀다. 깨진 부분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행인들은 이윽고 그 차가 불길에 휩싸이자 비명을 질러댔다. 빠른 속도로 금속과 고무가 녹을수록 불길은 더욱 뜨겁고 높이 치솟았고, 연기는 더욱 심해져만 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 끔찍한 잔해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종인은 그곳에 서서 소방차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줄담배를 피워댔다.
***
경수는 자신의 현관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자신의 현관문 앞에 쭈구리고 앉아있던 종인을 보고는 멈춰 섰다. 종인의 옆에 버려진 담뱃재를 보아하니 종인은 이곳에 꽤나 오래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됐다. 경수는 종인의 옆으로 다가서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종인은 벌떡 일어나 경수에게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담배피면 안 돼."
경수가 종인을 째려보자, 종인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경수를 안심시켰다. 종인의 얼굴에 번지는 짓궂은 미소가 작은 소년 마냥 천진난만해 보였다. 종인이 경수의 뒤에 서자, 연기와 이른 아침의 비 냄새가 코 끝으로 훅 끼쳐왔다.
"뭐 사왔는데?"
종인이 경수의 어깨너머로 경수가 들고 온 묵직한 비닐봉지를 보았다. 경수가 두부와 계란 한 상자를 꺼내더니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엌 식탁 밑에 내려놓았다.
"또 여기서 공짜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경수가 우유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무심한 듯 말했다.
"뭐, 원한다면 돈을 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돈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거든, 숨어사는 은행원 도경수 씨."
"내가 숨어산다니?"
"자, 네가 이 집에 이사온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어. 아주 최근에 여기로 이사했다는 거지. 사람이 사는 집 치고는 너무 깨끗해. 너무 텅텅 비었어. 그리고 내가 장담하건데 너는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집에 살수 있는 돈을 벌어. 그렇게 생겼거든. 항상 깔끔하고, 단정하고, 완벽해."
종인이 한 팔로 부엌 식탁을 짚고, 다른 한 팔은 경수의 어깨에 걸치며 웃었다.
"나는 그래서 네가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 응? 뭐, 너네 은행의 금고에서 한 몇 억을 훔치셨나?"
"첫번째, 나는 아직 내 직업이 있어. 두번째, 나는 상업 목적의 은행에서 일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 은행에는 금고가 없지."
경수가 달걀 두 개를 집어들고, 잠시 멈췄다가, 달걀 상자를 찬장에 넣기 전에 두 개를 더 꺼내들었다. 요리는 평소 먹던 것의 두 배의 양을 해야할 때 더욱 까다롭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은행에서 일을 하는 건데? 오, 지금 오믈렛 만드는 거야?"
"어."
경수가 약간 화난 듯이 한숨을 쉬었다.
"투자 은행. 알겠어? 그게 도대체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뭘 하던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이잖아. 그냥 조금 다를 뿐이지, 재미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사무직이야."
달걀, 다진 고기, 소금, 칠리, 파, 들기름. 후라이팬이 크고 시끄러운 지글지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수가 두부국에 물 한 컵을 넣었다.
"아, 칠리 조금만 더 넣어. 그래 맞아, 나랑은 상관이 없어. 그냥 좀 심심한 것 뿐이지. 그래서 투자 은행원 도경수 씨, 거기서 이제 뭘 하는 거지?"
"금융증권을 사고 파는 일을 해. 거래를 하는거지.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하나의 거래를 하면 또 다른 하나의 거래가 들어와. 차익 거래를 통해 이윤을 채득하는거야. 지겹고 재미는 하나도 없어."
경수가 밥솥을 열어 남은 밥을 확인했다. 어렴풋하게 두 명치 밥으로는 충분할 것 같았다. 종인이 밥솥 가까이 와서 손으로 밥을 아무렇게나 퍼서 저의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경수가 주걱으로 종인의 손목을 쳤다.
"돈이 지겹고 재미없는것 같지는 않은데."
종인이 마치 밥알 대신에 아주 끈적한 꿀을 핥듯 느리고 꼼꼼하게 저의 손가락을 핥았다. 경수가 다진 고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와. 그렇구나. 아이고 놀라워라."
"돈은 우리가 평생 살면서 갖게 되는 제일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지. 그저 종이 한 장이 아닌, 그 돈이, 그 시스템이, 그 어떤 일련적인 전자 시스템이 한 나라를,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봐. 그래서 어디서 일 하는 건데? 여의도?"
"어. 여의도."
다진 고기 위로 계란을 부음과 함께 경수의 팔꿈치가 종인의 가슴팍을 쳤다.
"그럼 이제 말이 되네. 말끔히 치료된 상처도, 돈도, 깔끔한 흰 셔츠도, 가죽 신발도. 가슴팍에 딸린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은 백만 원짜리 캐시미어 수트를 입고, 검정색 잉크가 들은 만년필을 들고.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 스타일도. 한강 옆의 고층 빌딩에서 이뤄지는 호화로운 식사라던가. 너는 딱 그런 이미지야. 그게 보여. 그리고 주말에는 좀 미친놈들이랑 고속도로에서 300kmh를 넘는 속도로 신 나게 달리는 거지. 스릴을 즐기고 싶은거, 그런거 맞지?"
어느덧 완성된 오믈렛에서는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둘은 머스타드색의 소파에 앉아 오믈렛을 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그 둘은 회색빛의 마세라티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행인들의 부러운 시선, 엔진의 부드러운 소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검은색 가죽의 느낌을 만끽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에 경수는 종인을 유리창으로 덮인 어느 한 고층건물의 옥상으로 데려갔다. 도시 꼭대기의 바람은 차갑고 거셌다. 그 높이에서 조그만 사람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도시의 빛나는 야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고층건물의 은행 같은 곳에서 돈이 삶으로 변해. 하루에도 수없이 억대의 돈이 기계들 안에서 스캔되고 코드화가 된 채로 그렇게 움직이고,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거지. 종이 형태의 돈이 기계화 된 숫자들의 행렬로, 코드로, 또는 전자 칩들로 그 형태가 끊임 없이 바뀔 때 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 나는 돈으로 거래를 하는 직업이지만, 내가 현금을 손으로 만진 지는 굉장히 오래된 것 같다."
경수는 코드화된 돈을 본 적이 있다. 경수는 어떻게 돈이 그 형태를 잃어가는지도 보았다. 돈이 생각(idea)으로. 돈이 영원한 데이터로. 돈이 어떤 사람의 부의 가치로.
"보니까 금융가들이 수도승들보다 더 정신적으로 단련이 많이 되어있을듯 해."
종인이 난간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돈을 가진 자들이 그 재력과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거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야. 우리는 미래를 계산하고 예측해."
그 후에, 그 둘은 갈마산을 향해 달렸다. 한껏 내린 창문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두 남자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스쳐갔고, 바람소리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엔진 소리는 묻혀갔다. 종인은 절벽 가장자리와 앞바퀴의 사이에 몇 미터도 채 안 되어 보이는 틈을 남겨놓고 차를 세웠다. 종인과 경수는 차 키를 여전히 차에 꽂아둔 채 차에서 내렸다. 차에 달린 모든 조명들과 알람 시스템을 켜 둔 뒤,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이윽고 차가 절벽 밑으로 그 죽음을 맞이하며 떨어졌고, 빛나는 조명과 요란한 소리만이 밤하늘을 울려댔다.
그들은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마세라티가 산 아래로 부서지고 굴러떨어지는 것을 함께 지켜봤다. 걸어서 내려가기에는 조금 긴 거리였지만, 경수는 종인이 꽤 괜찮은 대화 상대라고 여겼다.
***
"LSD랑, 새 타이어랑, 기어박스랑 엔진 마운트, 조종석에 추가 모니터도 달아주고, 새 핸드 브레이크, 새 통풍 조절관이랑, 엔진 좀 많이 튜닝해주면, 레이스에 참가하기에는 딱 좋은 상태가 될 거야. 근데 난 아직도 왜 네가 네 제네시스를 레이스에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 그래, 카이한테 좀 빻이긴 했는데, 그래도 엔진은 아직 잘 달리잖아?"
"데칼이랑 플래싱 LED 조명, 안 필요한 거 맞아?"
백현이 제 GT-R 옆에서 소리쳤다. 그에 경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음, 그리고 또 다른 그림이나, 차에 붙일 데칼이 필요하거든 백현이한테 물어봐."
"아니, 절대 그러지 마!"
민석이 제 370z Coupe 옆에서 소리쳤다.
"내가 언제 헬로 키티 페인트를 칠해 달라고 했어! 아 진짜 내 차에 뭔 짓을 한거야!"
민석이 제 370z 앞문에 헬로 키티 얼굴이 커다랗게 페인팅 된 차를 끌고 오며 소리쳤다. 경수는 그 커다란 헬로 키티 얼굴을 그려놓은 것이 어떤 반달리즘을 갖고 있는 장난꾸러기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백현이 한 것으로 탄로 났다.
"진정해, 김민석. 누가 알아? 레이스 워에서 가장 예쁘게 페인팅 된 차를 뽑으면 네가 이길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나한테 감사하기나 해라. 아 그리고 그거 아냐? 헬로 키티 그림은 네 마력을 300% 까지 끌어올려 준다고. 나한테 감사하기나 해."
"야. 그러면 지금 내 차 창문에 붙인 저 캐릭터 데칼들은 또 뭐고? 지금 나보고 저걸 붙이고 레이스 하라고? 미친놈아!"
"저 데칼 하나 당 50 bhp를 올려 준다고 생각 해, 달링."
경수는 저 백현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이 하는 짓에 이상함을 느낀다거나 진지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그들은 경수의 차가 정비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경수에게 노란색 현대 투수카니를 빌려줬다. 백현이 말하길, 계란 노른자 색이라고 했다. 차 키도 노란색 계란 노른자 색과 어울리는 흰색이었다. 사실 이 차는 백현이 예전에 쓰던 차였다. 찬열이 백현에게 시내에 있는 가게에 가서 부품들을 사 오라고 했을 때, 경수는 자처해서 저가 가겠다고 했다. '테스트 차원에서'라고 말하며 투수카니의 운전자석으로 올라탔다. '계란 노른자를 운전하는 법도 좀 배우게' 라고 능글맞게 말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여름의 무더위에 차고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백현은 찬열보다 더욱 가십거리들을 나누기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백현은 차에 딸린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며,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들에 따라 외국의 힙합 가수가 되었다가도 섹시한 K-pop 걸그룹으로 변했고, 또 트로트 노래들도 신 나게 부른 후에 교통 정체를 안내하는 아나운서가 되기도 했다. 백현은 매번 차가 빨간 신호에 걸릴 때마다 쉬지 않고 춤을 추는 사람이었다. 그 춤을 춘다는 것이 백현에게는 문어처럼 팔을 흐느적거리거나 머리를 튕겨대는 이상한 몸짓이라고 해도 말이다.
"카이는 막 사라졌다가 다시 막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그런 걸 잘하는 사람 중에 하나야. 만약에 네가 카이의 전기를 쓰면, 한 몇 십 페이지쯤은 텅텅 빈 채로 내게 될걸. 그리고 그 텅텅 빈 페이지 위에는 이렇게 작은 메모 같은 걸 쓰는 거야 - '카이는 여기서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렇게 쓰고 또 그다음 페이지에는 - '카이는 4달 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말이야. 그 텅텅 빈 페이지들을 찢잖아? 그러면 그 책은 굉장히 짧은 책이 될걸."
"바로 어제 차고에서 카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래, 그것 뿐이지. 네가 여기 온 뒤로는 나타나는 숫자가 빈번히 많아졌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현이 경수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쩌면 후디니같은 삶을 던져버리려는지도 모르겠네."
백현이 웃던 것을 멈추고는 한껏 고심하는듯 한 표정을 지었다. 긴 손가락이 창틀을 일정한 리듬으로 툭툭 쳐댔다.
"음, 카이가 항상 그래왔던 건 아니야. 사라지고 나타나고 하던 게... 아마... - 4, 5 년 전 쯤? 아마도 카이가 세훈이랑 민석과 사이가 틀어진 후 부터였지 아마. 걔네들은 아무도 그거에 대해 모르는 줄 아는데, 그래도 좀 그런 게 있잖아, 다 보이는 거. 그냥 아무도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거지 뭐."
"그 셋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세훈이랑 카이는 어릴 적 부터 친했지. 소꿉친구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그랬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같이 어울려 다니는 거야. 찬열이랑 나처럼. 어쨌든, 아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세훈이가 매일 카이를 따라다녔단 말이야? 그리고는 민석이 왔지. 그래서 걔네 셋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됐어. 근데 몰라, 어찌어찌하다가 세훈이랑 민석이만 어울려 다니더라. 카이가 걔네들한테 화가 났거나, 뭐 그랬나 보지. 나도 사실은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 이후로 카이가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던 거야. 진짜 미쳤지 - 걔네들이 카이 차가 산 한 쪽에서 완전히 부서진 채로 있는 걸 발견했는데, 우리 다 놀래가지고... 뭐 하여튼 그랬어."
빨간 신호등을 받아 멈췄을 때, 번지르르한 흑요석 빛을 띄는 BMW 가 경수와 백현이 타고 있는 투수카니 옆에 멈춰 섰다. 차고로 돌아가는 길에서 반 킬로 미터쯤 남아있던 참이었다. BMW의 운전석에는 종인이 앉아 있었다. 종인은 경수와 백현을 향해 한 영화배우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장면처럼 선글라스를 벗으며 씩 웃었다.
"그래, 새 차는 어떤 것 같아?"
종인이 경수에게 투수카니의 열린 창문으로 물었다.
BMW가 조명을 세 번 깜빡였다. 엔진이 회전 속도를 가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경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씩 웃고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딱 밀착시킨 채, 투수카니의 기어를 올렸다. 이윽고 백현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서는 저의 안전벨트를 꼭 잡았다. 경수가 종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손은 핸들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강렬한 눈빛 교환에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좁혀지는 것 같았다. 종인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도전이 아니었지만, 도전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신호등의 조명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셋, 둘, 하나. 노란색에서 녹색으로. Zero. 두 대의 차가 동시에 공기를 뚫고 지나갔다.
"아, 헐, 아, 미친! 지금 뭐 하자는 거- 아 미친!"
백현이 경수의 옆에서 꽥꽥 소리를 질러댔지만, 경수는 그런 백현을 듣지 못했다.
"도경수, 앞! 앞에 보라고!"
두 대의 차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갈수록,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은 더욱더 끈끈해져갔다. 레이스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은 마치 지금 당장 도로 끝까지 달려가 절벽에서 함께 자살하려는 듯 한 눈빛이었다. 예컨대 하나님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을 뜬다,라던가 혹은,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다, 이따위 구절이 지금 두 사람의 눈빛에 어울릴 법 했다. 인천 트랙에서의 재규어가 제네시스를 할퀴고 서로를 결승선까지 몰아붙였던, 그날 밤의 느낌이 들었다. 종인의 눈빛은 완고하고 뚜렷했다. 공기 중의 파장에 차를 맡겼다.
백현은 이제 그냥 경수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수와 종인이 다른 차들을 밀리미터 간격으로 치고 들어가면, 다른 운전수들은 그들을 향해 경적을 울려대고는 했다. 경수는 핸들을 잡은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종인은 계속 웃고 있었다. 차고에서부터 100미터 남짓했을 때, 그들은 마침내 교환하던 눈빛을 떼고서는 다시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종인이 입가에 큰 웃음을 그리고서는 투수카니를 앞질러 도착점에 커브를 그리며 다다랐다. 경수가 종인의 몇 초 뒤쯤에 앞 뜰에 다다랐다.
"와 미친, 진짜 박찬열 말대로 네가 카이 버전 2 맞구나, 와, 씨."
백현이 허공에 양손을 들고서는 허우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종인이 차 문을 세게 열고서는 차에서 내렸다. 종인의 팔이 경수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차고로 들어갔다.
"지금 너 나한테 부쩍 친숙하게 구는 것 같다?"
경수가 저의 어깨에 둘러진 종인의 팔을 약간 밀어냈다.
"이야, 도경수 목이 제일 편한 팔걸이다."
경수와 종인이 각각 저의 차를 차고에다 주차시켜두었다. 그들은 BMW의 꼭대기에 나란히 앉아, 고층 빌딩의 유리 창문들이 노을을 반사하며 만들어내는 도시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되게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려 죽겠는거 있는것 같은데. 그냥 말해봐. 어떤 고백도 다 받아줄 준비는 됐으니까."
종인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경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종인의 눈과 경수의 볼이 채 1cm도 안 될 것 같은 틈을 남겨두고 있었다. 경수는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는 종인의 입술이 노을에 반사되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몇 주 전에 네가 고속도로에서 네 재규어를 마구 들이받는 걸 봤어. 우리가 처음 만난 밤 말이야. 그 찌그러진 차 안에서는 아무도 안 나오더라. 기다렸거든."
"아."
종인이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종인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다 말할게. 나 저번에 네가 네 제네시스와 함께 도로변에서 적어도 한 다섯번은 굴렀던 걸 봤어. 불도 붙고 소방차도 오고 그냥 아주 난리가 났었지.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었어."
"...언제 알았어?"
경수의 심장박동이 가슴 속에서 더욱 커져갔다. 경수는 손을 말아쥐어 조심스럽게 저의 허벅지 위로 가져다대었다.
"아니, 천천히. 맞는 질문을 물어봐."
종인의 눈이 경수를 내려다볼 때, 더욱 뚜렷이 빛났다. 하늘은 맑고 짙은 회색빛이 나는 파란색을 띠며 점점 어둑해져가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근래 몇 주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는 차 사고가 난 후에 어디로 가는데."
"...미래로. 너는?"
경수가 잠시 숨을 멈췄다. 종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코 경수가 기대하던 답이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곳으로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난 차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항상 과거로 보내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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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제가 쓴 1편과 2편이 원글에서는 하나의 편이었어요, 그런데 보니까 그걸 한 편으로 뭉치려니 너무 긴 것 같아서 원글 1편을 반절로 나눠서 쓴 거에요. 이해가 안 된다거나 문맥이 좀 이상하다 싶은건 댓글로 달아주세요 :)